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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편. 나는 누구의 인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가

    사랑받는 사람은 왜 다른 인정을 구하는가 — 요한복음 1:19–28

    사람들이 요한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한 번 묻고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냐고 묻습니다.

    아니라고 하자 엘리야냐고 묻습니다.

    그것도 아니라고 하자 다시 “그 선지자냐?”고 묻습니다.

    요한은 또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결국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러면 너는 누구냐?”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자신들을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그리스도.

    엘리야.

    그 선지자.

    사람들이 알고 있는 큰 이름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요한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 이름들을 하나씩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아주 작아 보이는 단어 하나로 설명합니다.

    “나는 소리다.”


    사람들은 이름을 주려고 하고 요한은 이름을 내려놓는다

    20절에서 요한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ἐγὼ οὐκ εἰμὶ ὁ χριστός

    에고 우크 에이미 호 크리스토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이 문장의 ἐγώ(에고)는 ‘나’입니다.

    εἰμί(에이미)는 ‘나는 ~이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계속

    “너는 누구냐?”

    라고 묻자 요한도

    “나는…”

    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자기 자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아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큰 이름을 주려 하는데 요한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이름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행동과 조금 다릅니다.

    요한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자기가 아닌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자신에게 큰 이름이 필요해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무엇을 먼저 말할까요?

    직업을 말합니다.

    학교를 말합니다.

    직책을 말합니다.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말합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도 이야기합니다.

    이런 정보들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들이 단순한 설명을 넘어 내 존재의 가치가 되기도 합니다.

    좋은 직함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직책을 잃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내가 작아진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실제로 누구인가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이름으로 불러 주는가에 마음을 맡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사람들이 제안하는 가장 큰 이름들을 거절합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본문은 그의 심리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미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이었습니다.


    요한의 정체성은 사람의 질문보다 먼저 있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너는 누구냐?”

    라고 묻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자리를 정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은 말합니다.

    ἄνθρωπος ἀπεσταλμένος παρὰ θεοῦ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사람들이 요한에게 이름을 붙이기 전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를 평가하기 전에,

    누군가 그를 그리스도로 오해하기 전에,

    그는 이미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정체성은 사람들의 질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그의 사명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보내신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람들의 평가를 자기 존재의 마지막 기준으로 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소리다”

    23절의 대답은 더 놀랍습니다.

    ἐγὼ φωνὴ βοῶντος ἐν τῇ ἐρήμῳ

    에고 포네 보온토스 엔 테 에레모.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여기에서도 ἐγώ, “나는”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φωνή(포네),

    ‘소리’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거대한 이름을 묻고 있는데 요한은 자신을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무엇을 합니까?

    들립니다.

    그러나 소리의 목적은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존재는 자기 자신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의 길을 곧게 하라.”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조차 결국 주님을 향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 이유는 내가 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사람의 인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인정받으면 기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칭찬받으면 힘이 납니다.

    공동체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면 감사한 일입니다.

    문제는 인정이 사라졌을 때 나 자신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느낄 때입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계속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야 내 가치가 유지되고,

    내가 중요한 일을 해야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해야 내 존재의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다른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자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이름을 높여야 할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전달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가진 이름을 빼앗을 이유가 없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일을 숨기지도 않는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하게 볼 것이 있습니다.

    요한은 겸손을 자기 부정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렇다면 왜 세례를 베푸느냐?”

    라고 묻자 그는 말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푼다.”

    자기가 하는 일을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아무 의미도 없다.”

    고 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정체성의 중요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기를 과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지우지도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를 그대로 받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더 큰 분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인정과 하나님의 보내심은 방향이 다르다

    사람의 인정은 대개 나에게 시선을 모읍니다.

    “저 사람은 대단하다.”

    “저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다.”

    “저 사람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요한의 말은 시선을 자꾸 자기 밖으로 보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소리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푼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요한에게 머물지 않고 예수께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크게 보는가?”

    가 아니라

    “사람들이 내가 가리키는 분을 보고 있는가?”

    가 됩니다.


    이미 가운데 계신 분을 알면 내가 중심일 필요가 없다

    요한은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서 있다.”

    이 문장은 사람의 인정 문제를 생각할 때에도 중요합니다.

    왜 내가 모든 관심의 중심이 되어야 할까요?

    이미 중심에 서 계신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모든 사람에게 답이 되어야 할까요?

    이미 오신 분이 있습니다.

    왜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해야 할까요?

    나의 존재가 그들의 인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빛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압니다.

    그래서 구원자인 것처럼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소리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소리의 일을 하면 됩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내 사명도 사라지는가

    우리의 삶에서는 이런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열심히 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는데 인정받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받고 나는 지나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 질문 속에는 때때로 일의 의미와 사람의 인정을 하나로 묶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의 모습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보내신 분 때문에 하는 일이 있다면,

    사람의 인정이 그 일의 시작이 아니었던 것처럼 사람의 무관심이 반드시 그 일의 끝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인정해 주는가에 따라 소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보내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인정을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에서도 극단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보니까 다른 사람의 말은 아무 필요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요한의 모습을 따르는 것과 다릅니다.

    요한은 질문을 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대답합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자기의 사역도 말합니다.

    다만 사람의 질문이 자기 존재의 근원이 되도록 두지 않습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평가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칭찬도 감사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마지막 대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이름과 하나님께 받은 자리

    지금까지의 문단을 함께 보면 아름다운 연결이 하나 생깁니다.

    1:12–13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1:19–28에서는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둘 모두 출발점이 같습니다.

    사람에게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프로젝트의 세 번째 질문도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서 다시 나를 얻으려 하는가?”


    사랑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를 증명할 필요가 있는가

    앞선 문단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 충만함에서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 요한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계속 크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이름을 가져올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리와 비교해 자기 가치를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없앨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싶은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리에서 살아간다.

    요한에게 그것은 소리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맡겨진 자리는 무엇일까요?


    나는 누구의 대답으로 나를 설명하는가

    사람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무슨 일을 하느냐?

    얼마나 이루었느냐?

    어디에 속해 있느냐?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정받느냐?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질문들보다 먼저 있어야 할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부르셨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자리를 맡기셨는가?

    요한은 자신을 증명하려고 사람들의 큰 이름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없애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를 알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가 아닌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자유롭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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