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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레위기 27장 한 문장 요약]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원하여 자신이나 짐승·집·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서원했을 때 그 약속을 감정대로 바꾸지 못하게 하시되, 가난한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값을 조정하게 하시고, 이미 하나님의 것인 초태생과 십일조는 다시 자기 소유인 것처럼 다루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리로 레위기를 마무리하신다.
레위기 27장은 토라포션 베후코타이의 마지막 부분이며 동시에 레위기 전체의 마지막 장입니다. 장 마지막 34절은 “이것들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계명들이다”라고 레위기 전체를 시내산 계시와 연결하며 닫습니다.
질문 1: 선생님, 레위기 27장은 성경 전체와 토라 구조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은 무엇인가요?
1단계: 거시적 문맥과 저자 의도 파악
답변:
레위기 26장을 읽고 27장으로 넘어오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26장은 아주 웅장하게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걸을 때에는 생명과 평화가 흐르고,
말씀을 계속 거부하면 질서가 무너지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겠다.”
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7장에서는
“사람의 값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
“집을 바쳤다가 다시 찾으려면 얼마를 더 내야 하는가?”
“밭을 서원하면 어떻게 계산하는가?”
“십일조를 바꾸어도 되는가?”
같은 매우 실제적인 문제가 나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26장은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는 장이고, 27장은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어떻게 책임지는가를 보여 주는 장입니다.
흐름을 연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중심 내용
| 레위기 25장 | 땅과 사람은 하나님의 것 |
| 레위기 26장 |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며 백성과 함께 걸으심 |
| 레위기 27장 | 사람도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가볍게 바꾸지 않음 |
| 27:34 | 시내산에서 주어진 계명 전체의 결론 |
27장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אִישׁ כִּי יַפְלִא נֶדֶר
이쉬 키 야플리 네데르
“어떤 사람이 특별한 서원을 할 때…”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נֶדֶר — 네데르, 서원
입니다.
서원은 강제로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께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이 감정이 뜨거울 때 무엇이든 약속하고, 마음이 바뀌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취소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레위기 27장의 핵심 질문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한 것을 나는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가?”
입니다.
질문 2: 이 말씀은 언제 주어졌으며 우리 역사와 비교하면 어느 시기인가요?
2단계: 발생 시기 및 한국사 비교
답변:
레위기 27장의 역사적 장소는 마지막 절에서 아주 분명해집니다.
בְּהַר סִינָי
베하르 시나이
“시내산에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사람,
짐승,
집,
기업의 밭,
희년,
십일조까지
앞으로 땅에서 살아갈 삶의 구체적인 질서를 가르치십니다.
조기 출애굽 연대설을 적용한다면 대략 기원전 15세기경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출애굽의 정확한 절대연대에는 여러 견해가 있으므로 이를 확정 연도로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사와 비교하면 한반도에서 신석기 말기와 초기 청동기 문화의 전환을 논하는 매우 이른 시기에 해당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는 한반도 남부 청동기 문화의 상한이 기원전 15세기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소개하고 있으며, 늦어도 기원전 13세기경에는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를 설명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정리하면 좋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과 소유의 경계를 배우던 아주 오래전, 한반도에서는 초기 농경사회와 청동기 문화로 넘어가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질문 3: 레위기 27장의 히브리 원문 문단 구조는 어떻게 나뉘나요?
3단계: 마소라 문단 구조 분석
답변:
레위기 27장은 현대 성경의 여러 소제목과 달리, 마소라 본문에서는 놀랍도록 크게 묶여 있습니다.
8절 뒤에 ס(쓰투마, 닫힌 문단)가 있고,
34절 마지막에 פ(프투하, 열린 문단)가 있습니다.
따라서 마소라 문단 자체는 크게 두 부분입니다.
문단범위유형중심 내용
| 1문단 | 1–8절 | 닫힌 문단 ס | 사람에 관한 서원과 정해진 평가액 |
| 2문단 | 9–34절 | 열린 문단 פ | 짐승·집·밭·초태생·헤렘·십일조 및 레위기 결론 |
그러나 두 번째 문단이 매우 길기 때문에 수업에서는 의미 단위로 다시 나누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1~8절
사람과 관련된 서원의 평가
9~13절
짐승을 하나님께 구별함
14~15절
집을 거룩하게 구별함
16~25절
기업의 밭과 희년을 기준으로 한 평가
26~27절
이미 하나님께 속한 초태생
28~29절
헤렘(חֵרֶם), 되돌릴 수 없는 구별
30~33절
땅과 가축의 십일조
34절
레위기 전체의 시내산 결론
이것들은 교재용 의미 단위이고, 원문의 마소라 문단은 1~8절 / 9~34절이라는 큰 두 단위임을 구별해야 합니다.
이 구조가 의미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문단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
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뒤로 갈수록
“사람이 새롭게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 이미 하나님께 속한 것”
이 나타납니다.
26절의 초태생은
לַיהוָה הוּא
“그것은 여호와의 것이다.”
30절의 십일조도
לַיהוָה הוּא
“그것은 여호와의 것이다.”
라고 선언합니다.
즉 장의 후반으로 갈수록 질문이 바뀝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
에서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었던 것은 무엇인가?”
로 이동합니다.
질문 4: 히브리 문장의 바브(ו)는 어떤 역동성을 보여주나요?
4단계: 바브 접속사와 동사 흐름 분석
답변:
레위기 27장은 특별히 וְאִם, 베임 — “그리고 만일”이라는 조건문이 반복됩니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다음 책임이 무엇인지 하나씩 연결해 갑니다.
① וְהָיָה עֶרְכְּךָ — “그리고 그 평가액은…”
3절부터 계속
וְהָיָה עֶרְכְּךָ
“그 평가액은…”
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여기에서 עֵרֶךְ, 에레크는 평가된 액수를 뜻합니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금액은
“이 사람은 50세겔짜리 인간이다.”
라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뜻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라시 주석도 이 평가액이 사람의 시장가격을 재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나이 범주에 따라 정해 놓은 고정된 서원 평가액이라고 명확하게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중학생 교재에서는 반드시 이렇게 설명해야 합니다.
레위기 27장의 금액은 사람의 존엄성이나 인간적 가치를 가격으로 매긴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형태의 서원을 성막에 납부할 수 있도록 정해 둔 제의적·법적 기준입니다.
② 그러나 8절에서 흐름이 바뀝니다
וְאִם־מָךְ הוּא מֵעֶרְכֶּךָ
“그러나 그가 그 평가액을 감당하기에 가난하다면…”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עַל־פִּי אֲשֶׁר תַּשִּׂיג יַד הַנֹּדֵר
“서원한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만큼”
제사장이 다시 평가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서원했다고 해서
“약속했으니 가족이 굶더라도 반드시 정액을 내라.”
고 하지 않으십니다.
서원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현실도 고려됩니다.
하나님은 책임을 가르치시면서 동시에 사람이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보십니다.
③ גָּאֹל יִגְאָל — “정말 되찾으려 한다면”
13절:
וְאִם־גָּאֹל יִגְאָלֶנָּה
“만일 그가 그것을 반드시 되찾으려 한다면…”
19절:
וְאִם־גָּאֹל יִגְאַל אֶת־הַשָּׂדֶה
“만일 그가 그 밭을 되찾으려 한다면…”
31절에도 같은 구조가 나타납니다.
גָּאֹל은 부정사 절대형,
יִגְאַל은 동사형으로 같은 어근이 겹칩니다.
앞 장에서 보았던 히브리어 강조 구조입니다.
גאל — 가알
되찾다, 무르다, 속량하다
그런데 되찾을 때에는 보통
5분의 1, 즉 20%를 더합니다.
왜 그럴까요?
서원하고 다시 되찾는 것을 너무 가볍게 반복하지 못하도록 책임의 무게를 붙여 놓은 것입니다.
④ הָמֵר יָמִיר — 바꾸고 또 바꾸려 한다면
10절과 33절에는 매우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וְאִם־הָמֵר יָמִיר
“만일 그가 정말 바꾸려 한다면…”
좋은 짐승을 나쁜 것으로,
또는 나쁜 짐승을 좋은 것으로 바꾸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꾸어 버렸다면 어떻게 됩니까?
וְהָיָה־הוּא וּתְמוּרָתוֹ יִהְיֶה־קֹּדֶשׁ
“원래 것과 바꾼 것 모두 거룩하게 된다.”
상당히 강한 규정입니다.
하나님께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한 뒤
“생각해 보니 좋은 것은 내가 갖고 더 나쁜 것으로 바꿔야겠다.”
라는 계산을 막습니다.
질문 5: 본문의 문학적 구조와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5단계: 문학적 구조 분석
답변:
레위기 27장은 하나의 완벽한 키아즘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서원의 대상이 확대되다가 마지막에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수렴되는 구조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A. 1–8절
사람에 관한 서원
→ 정해진 평가액
→ 가난한 사람은 능력에 맞게 조정
B. 9–13절
짐승
→ 드린 것을 함부로 교환하지 않음
→ 되찾을 경우 책임이 따름
C. 14–15절
집
→ 거룩하게 구별함
→ 되찾을 경우 1/5을 더함
D. 16–25절
밭
→ 희년을 기준으로 계산
→ 땅은 개인의 절대 소유가 아님을 다시 확인
E. 26–27절
초태생
→ 새로 서원할 수 없음
→ “이미 여호와의 것”
F. 28–29절
헤렘
→ 되돌릴 수 없는 특별한 구별
G. 30–33절
십일조
→ “여호와의 것이며 여호와께 거룩함”
H. 34절
“이것들이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명하신 계명들이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26절입니다.
לֹא־יַקְדִּישׁ אִישׁ אֹתוֹ
“사람이 그것을 따로 거룩하게 할 수 없다.”
왜요?
לַיהוָה הוּא
“이미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레위기 27장의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나서
“내가 하나님께 큰 것을 드렸다.”
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먼저 기억하라.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도 있다.”
그래서 레위기 27장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드렸는가
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며, 내가 드린다고 말한 것에는 책임을 지는가”
입니다.
질문 6: 문법적으로 특이한 표현과 반복어는 무엇인가요?
6단계: 히브리어 문법 및 반복어 분석
답변:
① נדר — 네데르, 서원
2절:
כִּי יַפְלִא נֶדֶר
“특별한 서원을 할 때”
서원은 장 전체를 시작하는 단어입니다.
레위기 27장의 규례는 기본적으로 자원하여 시작한 약속을 책임 있게 마무리하는 법을 다룹니다.
② פלא — 팔라, 특별하게 하다·명확히 표현하다
2절의
יַפְלִא
야플리
는 특별히 떼어 내거나 명확히 표현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라시 전통에서는 이것을 특히 입으로 분명히 표현한 서원으로 설명합니다.
즉 마음속에서 잠깐 생각한 정도와
입으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
사이에는 책임의 차이가 있습니다.
③ ערך — 아라크/에레크, 평가하다·평가액
레위기 27장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3~8절에서 사람의 평가액,
12절에서 짐승,
14절에서 집,
16절 이후 밭,
25절에서는 모든 평가에 사용할 성소 세겔의 기준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한번,
평가액 ≠ 인간 존재의 가치
라는 것입니다.
④ קדש — 카다쉬, 거룩하게 구별하다
9절:
יִהְיֶה־קֹּדֶשׁ
“그것은 거룩하게 될 것이다.”
14절:
יַקְדִּשׁ אֶת־בֵּיתוֹ
“그가 자기 집을 거룩하게 구별하면”
16절:
יַקְדִּישׁ אִישׁ לַיהוָה
“사람이 여호와께 구별하면”
30절:
קֹדֶשׁ לַיהוָה
“여호와께 거룩하다.”
레위기 첫 장들에서 성막과 제사가 거룩함의 중심이었다면,
마지막 장에서는
사람의 말과 소유도 거룩함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⑤ גאל — 가알, 되찾다·속량하다
13·15·19·20·27·31·33절 등에서 계속 나타납니다.
25장에서 이미 중요한 단어였습니다.
25장에서는 가난 때문에 잃은 기업과 사람이 되돌아올 길을 열어 주는 단어였습니다.
27장에서는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것을 다시 자기 사용으로 되찾는 문제에 사용됩니다.
같은 גאל이지만 문맥의 방향이 다릅니다.
25장
잃은 사람이 되찾는다.
27장
하나님께 드린 것을 사람이 다시 되찾으려 한다.
그래서 27장에서는 되찾을 때 추가적인 책임이 따라옵니다.
⑥ חֲמִישִׁית — 하미쉬트, 5분의 1
13·15·19·27·31절에서 반복됩니다.
즉 20%를 더하는 규정입니다.
이 반복은 레위기 27장에서
“하나님께 드린 것은 마음이 변했다고 아무 비용 없이 다시 원상복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책임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⑦ חֵרֶם — 헤렘, 완전히 돌이킬 수 없도록 구별된 것
28~29절은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כָּל־חֵרֶם קֹדֶשׁ־קָדָשִׁים הוּא לַיהוָה
“모든 헤렘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다.”
그리고 29절에는 사람에 관한 매우 강한 사형 표현까지 나옵니다.
이 부분은 일반 개인이 어떤 사람을 하나님께 ‘서원’하고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חֵרֶם은 평범한 נדר(서원)과 다른 고대 이스라엘의 매우 특별한 제의적·사법적 범주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 본문을 근거로 개인이나 종교 공동체가 누구에게든 폭력을 행사하거나 생명을 해치는 것은 본문의 역사적·법적 문맥을 완전히 벗어난 적용입니다.
⑧ מַעֲשֵׂר — 마아세르, 십일조
30절:
וְכָל־מַעְשַׂר הָאָרֶץ
“땅의 모든 십일조”
32절:
וְכָל־מַעְשַׂר בָּקָר וָצֹאן
“소와 양의 모든 십일조”
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לַיהוָה הוּא
“그것은 여호와의 것이다.”
입니다.
그리고
קֹדֶשׁ לַיהוָה
“여호와께 거룩하다.”
고 말합니다.
십일조의 출발점도
“내 것 가운데 얼마를 줄까?”
보다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된 것을 나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질문 7: 이 분석을 통해 얻는 종합적인 메시지와 오늘의 삶의 적용은 무엇인가요?
7단계: 종합 메시지 도출 및 적용
답변:
왜 레위기의 마지막 장이 서원과 돈 이야기일까요?
조금 이상합니다.
레위기 전체를 마무리한다면 우리는 아마
“너희는 거룩하라.”
“나는 여호와다.”
같은 웅장한 문장으로 끝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50세겔,
30세겔,
20세겔,
10세겔,
5세겔,
3세겔,
그리고 5분의 1,
십일조가 나옵니다.
이것은 오히려 레위기가 말하는 거룩함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거룩함은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한 말,
내가 가진 집,
내가 가진 밭,
내가 가진 짐승,
내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
내가 다시 되찾고 싶은 것,
내가 얻은 수확까지
구체적인 생활 속으로 들어옵니다.
첫째, 하나님께 한 말을 가볍게 하지 않습니다.
서원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작했다면 책임을 집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원리입니다.
감정이 뜨거울 때
“하나님, 앞으로 반드시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쉽게 말하고,
며칠 뒤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는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신앙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한 말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과 연결됩니다.
둘째,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8절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해진 평가액을 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규칙은 규칙이니 어떻게 해서든 내라.”
고 하지 않으십니다.
제사장이 그의 형편을 보고
“그 서원자의 손이 닿는 만큼”
평가합니다.
이것은 레위기 25장과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25장에서는 가난한 형제의 손이 내려갈 때
“그를 붙들어 주어라.”
고 했습니다.
27장에서도 가난이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책임은 있지만 그 사람의 형편도 고려됩니다.
셋째,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3~7절을 읽으면 남성과 여성, 나이에 따라 다른 금액이 나옵니다.
이것을 잘못 읽으면
“성경은 어떤 사람의 가치가 다른 사람보다 적다고 말한다.”
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인간 존재의 가치를 측정하는 가격표를 만드는 장이 아닙니다.
전통적 해석에서도 이 에레크(평가액)는 개인의 실제 시장가격이나 고유한 인격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원에 적용하기 위해 정해 놓은 법정 평가액으로 구별됩니다.
특히 8절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같은 액수를 낼 수 없는 사람을 따로 고려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금액이 다르다고 사람의 존엄성이 다른 것이 아니다. 이 표는 인간의 가치표가 아니라 고대 성막의 서원 정산표이다.
넷째, 하나님께 드리고 더 나쁜 것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짐승을 드린 뒤 갑자기 생각합니다.
“너무 좋은 것을 드렸나?”
그래서 좋은 것은 다시 가져오고 더 나쁜 것을 드리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십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바꾸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꾸어 버리면
둘 다 거룩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강할까요?
하나님께 드린 것을 다시 계산하며
“내가 손해 보았나?”
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막는 것입니다.
다섯째, 희년의 원리가 27장에도 계속 살아 있습니다.
16~24절의 밭 평가에는 계속
שְׁנַת הַיּוֹבֵל
“희년”
이 기준으로 등장합니다.
왜 밭의 가치를 희년까지 남은 연수로 계산합니까?
레위기 25장의 선언 때문입니다.
“땅은 내 것이다.”
땅의 사용권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사람이 땅의 영원한 절대 소유자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레위기 27장은 25장의 희년 원리를 실제 서원 계산 속에도 적용합니다.
여섯째, 이미 하나님의 것은 내가 다시 하나님께 선물한 것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26절의 초태생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새로 거룩하게 드릴 수 없다.”
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לַיהוָה הוּא
“이미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나서
“내가 이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길을 따라가면 오히려 질문이 바뀝니다.
내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시간은 누가 주었는가?
내 땅과 열매는 누구에게서 왔는가?
내가 가진 것을 가능하게 한 생명의 근원은 누구인가?
그러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내 것이 사라지는 것이라기보다
본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인정하는 행동
이 됩니다.
일곱째, 레위기의 마지막 단어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4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אֵלֶּה הַמִּצְוֺת אֲשֶׁר צִוָּה יְהוָה אֶת־מֹשֶׁה אֶל־בְּנֵי יִשְׂרָאֵל בְּהַר סִינָי
“이것들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계명들이다.”
레위기는 사람이 거룩함을 찾아내는 책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가르치셨고,
성소를 가르치셨고,
이웃 사랑을 가르치셨고,
제사장을 가르치셨고,
시간을 가르치셨고,
땅과 희년을 가르치셨고,
언약의 길을 가르치셨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한 약속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까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전체의 생명나무 흐름을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부르심
↓
죄와 부정에서 살 길을 마련하심
↓
사람을 거룩하게 구별하심
↓
이웃과 약자를 살리게 하심
↓
시간과 땅까지 쉬게 하심
↓
무너진 사람에게 돌아올 길을 주심
↓
백성 가운데 함께 걸으심
↓
사람도 하나님께 한 말을 진실하게 지키며 살아감
질문 8: 본문에서 하나님이 늘 함께하심을 알 수 있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8단계: 하나님이 늘 함께하심을 알 수 있는 문장
답변:
레위기 27장에는 26장의
“내가 너희 가운데 걸어 다니겠다.”
처럼 직접적인 동행 선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없는 말을 억지로 찾아서는 안 됩니다.
27장에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문장은 마지막 34절입니다.
אֲשֶׁר צִוָּה יְהוָה אֶת־מֹשֶׁה אֶל־בְּנֵי יִשְׂרָאֵל בְּהַר סִינָי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셨다.”
— 레위기 27:34
레위기 전체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은 백성에게
“거룩해져서 나에게 올라오라.”
고 멀리 계셨던 분이 아닙니다.
시내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회막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제사를 통해 가까이 나아오는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먹는 것,
가족,
이웃,
농사,
가난,
시간,
땅,
돈,
서원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세밀하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들과 함께 살아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7장의 반복 표현
לַיהוָה
“여호와께”
도 중요합니다.
사람도,
짐승도,
집도,
밭도,
십일조도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말과 약속과 소유를 다루는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무리: 사자성어
일낙천금(一諾千金)
一 한 일
諾 허락할 낙
千 일천 천
金 쇠 금
뜻은
“한 번 한 약속의 무게가 천금과 같다.”
는 것입니다.
중국 역사에서 약속을 매우 잘 지킨 인물로 알려진 계포(季布)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한 사람의 약속과 신뢰가 큰 재물보다 귀하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레위기 27장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에는 감동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마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좋은 짐승을 보니 아깝습니다.
집을 다시 사용하고 싶습니다.
밭이 생각보다 가치가 큽니다.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말을 다시 계산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르치십니다.
“네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한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람을 약속에 짓눌려 죽게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하여 평가액을 감당할 수 없으면
“그 손이 닿는 만큼”
제사장이 다시 정해 줍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균형이 있습니다.
약속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레위기 마지막에 가면 더 깊은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한 약속보다 먼저,
레위기 26장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겠다.”
사람에게
약속을 지키라
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먼저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27장의 일낙천금은 단순한 인간의 성실함을 넘어갑니다.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도 자기 말과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에서는
“하나님의 것은 움켜쥐어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고 배웠습니다.
레위기 26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걸을 때 하나님도 우리 가운데 걸으신다.”
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마지막 27장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한 말까지도 진실하게 책임진다.”
고 마무리됩니다.
학생들과 나눌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임을 안다면,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한 약속을 오늘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요?”